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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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용서는 결국 내 자신을 위한 것임을

깨닫는다면, 용서의 실천이 덜 어렵지

않을까요?

어떤 분이 용서와 관련해서 깊이 새겨

볼 만한 글을 올렸기에 소개합니다.

 

 

예수님의 빛 안에서만 제대로 된 용서를

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상에서

당신을 죽이는 사람들마저 용서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자주 그분의 현존 안에 머무릅시다.

 

 

용서는 관용주의 한 형태라거나 무분별한 특사가 아니다. 용서는 우리에게 해를 입힌 악(惡)이

우리를 악하게 만들지 않도록 하기 위한

매일의 고된 투쟁이다.

용서는 결코 우리에게 악을 행한 사람처럼

되지않기 위한 시도인 것이다.

미움은 사악한 사랑의 한 형태이며,

결국 우리가 의식하지도 못한 채

‘정확히’ 우리가 미워하는 그 사람처럼

변하게 만든다. 용서는 이 악몽을 쫒아버린다.

성 프란치스코는 단순하고 멀리 볼 줄 아는 마음을

지녔었기에 이를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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